13월의 입 I 이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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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입

 

네가 남겨둔 음악을 듣다 나는 엎드려 잠들고
누군가 등 두드려 깨어보면 모두들
내 꿈을 필기하고 있었다
칠판 가득 문드러지는

잠든 입술의 고요한 눈금들 움직이며
잠긴 서랍에선 연필 구르는 소리
찬물 속의

빈 새장의 나무막대는
햇빛을 휘감고 햇빛 속에
지워져가고, 더듬으면 기억의 유리막대
휘저으면 휘젓는 대로 흥얼흥얼 따라나서는
물결들, 엎드려있던 상처들이 손잡고 떠올랐지만

여긴
어디지?
눈 뜨지 마 아직
입 벌릴 어둠도
없어 아직도
아물지 않은 분수야
허옇게 치솟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한 줄기 쓰라린 분노가 우리를 눈감길 때까지
나는 쓰러진 화환, 축축한 스펀지로 연명했다
빛나는 컴퍼스 다리가 징검징검
생의 좌표를 찍어 누를 때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바늘구멍으로 한 톨의 진실을 밀고
당기는데, 햇빛은 웅덩이마다 무지갯빛
기름띠를 두르고 둥둥
북을 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현재에 가장 희박한 부피
뒷면 빼곡히 비치는 소실의 한 대목만을 노려보았다

움직이지 마
조심해 빛을
깨뜨렸어 누군가
건너가야 해 우리
말곤 없어 벌어진
입술 갈라진 몸들에 발을 넣고
하나의 뿌리로 건너가는 목소리

여긴
누구지?
(메아리 없는 목소리)
아직도 손 뻗으면
휘어드는

우리는 처음에
굴절이었다
수면으로 떨어지는
물방울과 다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한 꺼풀의 수면에서
마주친다는

파문이었다
내게서 피어나는 것은
너에게서 구겨져있던 것들이었다

흐린 페트병 같은
창밖으로 나는 눈을 틔운다 몇 마디
재채기가 되어 몸 밖으로 뛰쳐나온다
너무 작은 화분의 너무 빽빽한 뿌리처럼
숨 가쁘게 문
열어보면

너는 없고 또 다시
내 몸에서 갈라지는 목소리, 메마른
흙더미 속을 헤집는 혀처럼 나는 네 입술의 문턱에서
폭설로 넘어지고 폭설로
넘어서고 있었다

 

*텍스트의 편집이 원문과 다릅니다. 육필원고를 참고해 주십시오.


이설빈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13월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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