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I 정우신

3

 

움직이는 것은 슬픈가.
차가운 것은 움직이지 않는가.

발목은 눈보라와 함께 증발해 버린 청춘, 다리를 절룩이며 파이프를 옮겼다. 눈을 쓸고 뒤를 돌아보면 다시 눈 속에 파묻힌 다리. 자라고 있을까.

달팽이가, 어느 날 아침 운동화 앞으로 갑자기 떨어진 달팽이가 레일 위를 기어가고 있다. 갈 수 있을까. 갈 수 있을까. 다락방에서 반찬을 몰래 집어먹다 잠든 소년의 꿈속으로. 덧댄 금속이 닳아서 살을 드러내는 현실의 기분으로.

월급을 전부 부쳤다. 온종일 걸었다. 산책을 하는 신의 풍경, 움직이는 생물이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없다. 공장으로 돌아와 무릎 크기의 눈덩이를 몇 개 만들다가 잠에 든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슬픈가.
가만히 있는 식물은 왜 움직이는가.

밤이, 어느 작은 마을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밤이 등 위에 정적을 올려놓고 천천히 기어간다. 플랫폼으로. 플랫폼으로. 나를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창밖으로 내리는 눈발의 패턴이 바뀐다.

간혹 달팽이 위로 바퀴가 지나가면 슬프다고 말했다.

잠들어 있는 마음이 부풀고 있다.

나를 민다.
나를 민다.


정우신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원숭이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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