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 I 서광일
by 서광일
초록색은 초록색으로 지워야 들키지 않는다.
한 개의 떡갈잎을 지우기 위해 두 개의 떡갈잎을 그리고 두 개의 떡갈잎을 지우기 위해 네 개의 떡갈잎을 그린다.
떡갈잎의 생명은 톱니바퀴에 있다. 톱니바퀴는 너를 자전거에 태우고 떡갈나무 숲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한다.
너의 입술과 내 입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떡갈나무 숲에서는 총알이 퓡― 퓡― 퓡― 날아다니고
우리가 없는 어떤 나라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재촉하지 말자, 아무것도.
불타는 대지를 깊은 한숨처럼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는 얼굴일지라도.
심장은 아무리 빨리 뛰어도 제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한다. 악몽처럼 너는 내 심장에서 뜀박질을 하고 있다.
한 개의 너를 지우기 위해 두 개의 너를 그리고 두 개의 너를 지우기 위해 네 개의 너를 그린다.
초록색은 초록색 바닷물이
다 마를 때까진 마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곧 휴가가 시작되고
아무도 없는 등대까지 우르르 몰려갔다가 우르르 돌아오는 밀물처럼
나도 그렇다!
나도 그렇다!는 속삭임이 우리 사이에 흘러넘칠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미칠 듯이 한 사람만 생각하면 모두 그렇다.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유지소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당신만 그런 게 아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