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의 하루 I 윤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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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의 하루

 

현기증 나는 수신함을 비운 나는, 비워도 가벼워지지 않은 나는, 가볍게 사는 게 뭔지 모르는 나는, 커서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정원이 없는 나는 매일 정원을 헤매는 나는, 무수히 나를 복제하는 나는, 심장처럼 깜박이는, 식물 없이 가꾼 정원에 사는, 하루를 시작하는, 앉았다 일어났다 오전을 보내는, 오후로 접속하는, 정원을 넓히는, 멀건 눈동자 같은, 의자에 기댄, 벽을 열면 벽이 열리는, 더 커지지 않는, 문서를 열고 닫는, 앉았다 일어났다 접힌 뱃살을 만지는, 뻐근한 허리를 펴는, 체중이 부푸는, 팔이 번쩍 올리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린 잡식성 같은, 벽이 출렁이는, 열었다 닫았다 우왕좌왕하는, 심장 없이 정원에 사는, 앉았다 일어났다 안부를 묻지 않는 수신함을 열었다 닫았다 매일 정원을 헤매는, 나보다 현기증 나는 커서가 나의 하루를 가벼이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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