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음 I 김산

차음

 

전달되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의 외피를 가로막고 있는 내피. 이를테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암막커튼을 둘러싼 빛의 소음. 무지개를 무지개라고 발음하는. 사막을 사막이라고 연주하는. 담배를 끊었지만 끊은 건 담배가 아니었다. 형태나 냄새가 아닌 개체가 타들어가는 소리의 실종 혹은 부재. 젊은 할아버지가 죽었다. 이것은 펙트지만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그는 원래 과묵한 사람이었으므로. 죽은 후에도 질문의 답을 주진 않았다. 새벽의 보일러는 불규칙적으로 돌아간다. 우 우 웅 건물 전체의 고막을 헤집는다. 가장 알맞은 온도를 나는 가늠할 수 없다. 나는 보일러 수리공의 입모양만 신뢰한다. TV가 있지만 콘센트를 꼽지 않는다. TV는 켜지 않아도 볼 수 있다. 리모컨이 없어도 채널은 널려 있다. 그렇지만 짐작은 가장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메뉴얼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귀는 그냥 달려있는 그 자체로 귀하다. 슬픔. 분노. 증오. 살인. 이런 것들은 귀가 시킨 심약한 반응이다. 가끔 이어폰을 끼지만 구멍을 막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는다. 귀보다 큰 헤드폰을 끼면 이 세계는 일순간 태아처럼 웅크린다. 그 어떤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왼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른다. 오디오는 앞뒤가 같다. 아시아. 기러기. 일요일. 실험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정직해서 쓸쓸하다. 토마토를 씹으며 일과를 마친다. 붉은 소리를 흡음한다.


김산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I 총체적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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