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사랑스러운 쪽* I 이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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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사랑스러운 쪽*

 

얇은 입술

창가에 야윈

우산 같은 너는

그 언덕을 두고

뒤집어진 지네라고 불렀다

뒤집어진 지네에선

매일 밤, 한 아름씩

솔향기가 안겨왔다

 

돌아누운 네 곁에서 나는

뒤집어진 지네는

이제 다만, 등, 푸른, 향기… 라고

가만가만 타일러주었다

 

그날 너의 소원대로

집 둘레에 넓은 담장을 세운 뒤

매일 밤, 나는 홀로 깨어

삽을 씻었다

 

등 푸른 향기에선

매일 아침, 한 창 가득

새소리가 눈부셨다

 

어느 날, 그 밤에 이르러

너는 등 푸른 향기를

덜 마른 우산에서 맡았다

덜 마른 우산은

매일 밤, 담장 너머

솔잎 몇 장을 묻혀왔다

 

우는 네 곁에서 나는

솔잎 몇 장을 떼어내며

고작, 지네 다리, 몇… 이라고

삽처럼, 끊어서, 말했다

 

어느 밤, 그 폭풍우 몰아치던 밤

곤히 접힌

바싹 야윈

우산을 품에 안고

삽은 그 언덕을 올랐다

 

비 갠 그날 아침

벼린 햇살

단호한 삽은

그 언덕 마지막 소나무를 들어내고

너를 묻고,

나를 묻고,

이건 겨우, 등, 시린, 기억일 뿐… 이라고

그 언덕을 툭 툭, 다독여주었다

 

그날 오후

홀로 돌아온 삽은

담장 안쪽에

마지막 소나무를 옮겨 심은 뒤

잠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얇은 꿈

매일의 폭풍

등 시린 기억에선

하늘 가득

바늘부리 우산날개의 새 떼가 날아들어

우린 고작, 네가 버린, 꿈의 다리, 몇! 이라고

그 언덕

뒤집어진 사내

 

내 면도한 입술의 흉터를 쪼았습니다.

 

*페터 한트케의 소설 『소망 없는 불행』에서


이설빈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13월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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