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포옹 I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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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포옹

 

말 없는 너를 보고 있어
녹화된 화면 속
말없이 뒤돌아서는 너를 보고 있어
네가 살고 싶다고 말한다면
네가 행복하고 싶어서 붉은색 꽃 장식이 달린 난간에 가 선다면
나는 듣고야 말 거야 나는 너의 이야기를 안고 더 멀리 걸어가고야 말 거야
노을은 날아가는 새들의 귓불을 가볍게 쓰다듬고
구름은 구름대로 너의 눈동자를 위로하겠지

고개를 들 거야 나는
손바닥을 치켜든 그 개새끼 앞에 서고야 말 거야
울먹이던 나를 하나 하나 모조리 기억해내고

키스

그에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할 거야
나와 그의 몸 전체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희망 앞에서
절망하지 않을 거야
나를 떠나 멀리 날아가 버린 풍선과
나를 찌르고 땅에 떨어진 녹슨 쇠꼬챙이 사이에서
무엇이 욕설처럼 벗겨지는지

그에게 분명히 말해줄 거야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나날들을 만날 수 있다면

햇빛 같은 웃음이 나올 텐데

수백 수천의 발판을 거슬러
모든 쓰러진 과거를 한 번 더 쓰러트리며 잠시만요를 연발하며
되돌아 내려가는 방법을
찾고야 말 거야
모든 것이 최후에 드러나기 전에
네가 도망칠 수 있는 가장 높은

숫자가 적힌 버튼을, 다시 누르기 전에


김승일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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