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을 입은 시인 I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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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을 입은 시인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어머니가 없는 공허한 시를 쓴다.
예술가들은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머리에 뿔을 단다. 광대의 옷을 입는다.
거친 발걸음으로 거리에 나가 거죽을 벗긴
날짐승을 전시한다.
대중은 환호하고, 예술은 진지하다.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고독한 오만으로 공허한 시를 쓴다.
재주 좋은 시인은
높은 나무에 올라 나뭇잎의 형상을 그린다.
시든 나뭇가지의 슬픔을 노래한다.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사로잡힌 유니콘의 뿔에 대해.
사랑하는 말발굽 소리에 대해.
문명인의 실험에 훼손당한 별의 슬픔에 대해.
스삭스삭 재킷의 말로 쓴다.
실상 외투는 어머니의 살로 만들어진 것.
재킷, 재킷! 하면* 어머니의 뇌와 심장이 실이 되어
올올이 풀려나온다.
재킷을 입고 추위를 견딘 나는
어머니에 대해 쓸 수 없다.
잠자는 숲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재킷을 태우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태어날텐데.
재킷의 재가 나무에 뿌려져
울창한 숲이 되면,
앙상한 내 겨드랑이에 날개가 생길텐데.
재킷을 입고 시를 쓴다.
너무 추워 재킷을 꼭 껴입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재킷, 재킷 말을 건다.

 

* 아베 고보, <시인의 생애>


이재훈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재킷을 입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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