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방 I 구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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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방

 

여기까지입니다. 그 동굴에 가서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까? 공포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한낮에 나는 연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대화를 쫓아갈 수 없으니 마냥 웃겠습니다.

다 닳은 말굽을 베고 누웠습니다. 나는 멀리서 돌아오는 꿈을 꾸곤 합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두고 온 것들이 생각납니다. 떠날 채비를 마친 소수의 사람들, 우리는 섞여버린 그림자를 자력으로 풀지 못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몇 개의 손이 포개져 있습니다.

몽유병은 최고의 훈장입니다.

집을 구하고 돌연 죽어버렸다는 떠돌이가 화제에 오릅니다. 한 밤도 못 보낸 집이었으니, 객사가 아니냐, 우리 모두 웃습니다. 우리를 둘러 싼 담은 함구의 한 형태입니다.

고향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동굴로 가겠다 자처한 이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꿈의 성량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각자 제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누군가의 긴 혀 위를 걷습니다. 어떤 맛에 중독된 사람들은 더 멀리 걷습니다. 이웃들이 문을 닫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동굴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구현우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프리즘, 표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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