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밀어주던 사람 I 이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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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밀어주던 사람

 

그 사람 떠나고, 나 혼자 떠밀렸습니다. 그 의자 기울고, 나 혼자 쏟아졌습니다. 제각각 맨발로, 나는 나에게 도착했습니다. 막다른 다리 위에서, 나는 나를 굽어보았습니다. 물에 잠기는 물결과 떠오르는 물결 사이, 몸 안 가득 투명한 나뭇결, 불어나는 내가 보이고…… 그게 어떻게 나인 줄 아는 지, 영영 모르겠고요.

내가 체온계를 깨물어버리고부터, 그의 입술은 더욱 얇아졌습니다. 어제는 조급하게 북북북, 몇 개의 동심원을 그리더니 눈앞에 들이밀고 톡톡, 뭐가 보이느냐고 묻는 겁니다. 그야…… 종이의 결이 보이죠. 그는 돋보기 눈먼 불빛으로 내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타버렸지요. 한참을 하얗게 타올랐지요. 내가 완전히 뼛가루가 되자, 그는 한 잔의 물과 함께 나를 삼켰습니다.

다시, 다리 위로 돌아옵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나의 다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붓고 가라앉고 붓고 가라앉는 창밖의 능선만큼이나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선잠처럼 뭉툭 끊긴 다리 위, 내 입 없는 운전수는 나를 번쩍 안아서 내려줍니다. 그리고 떠나며 한 마디, 아무 데서나 미치지 마요.

한참을 울렁이다, 줄줄 새어나가려는 그 말을, 나는 양손으로 받아봅니다. 아무에게나 비치지 마요. 잠잠해질 때까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다리 아래 드리워진 그늘 속으로 앙다문 자갈의 입술, 풀잎의 지느러미, 물빛의 박동…… 등등이 선명합니다. 나는 사로잡혀 함께 일렁입니다. 발소리 없는 굴렁쇠소리…… 가까워옵니다. 어떤 서늘한 발 하나, 내 뒤통수를 밟고 갑니다. 둘, 넷, 후드득…… 나를 건너, 갑니다.


이설빈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13월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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