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래 서 있는 나를 석고상인 듯 바라보고 가는 당신의 눈빛은 무엇인가 I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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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래 서 있는 나를 석고상인 듯 바라보고 가는 당신의 눈빛은 무엇인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한쪽 손으로
깎여 나간 얼굴의 반을 가린다
생각처럼 이어지는 사거리를 따라 차들이 휘어져 들어오는 길목
새들이 또 하나의 점선을 허공에 잇대고 있다

자동차 키처럼 길 위에 꽂혀 있는 나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을 각봉투처럼 들고 있는 나
어디로든 가겠다
기름을 바르고 단추를 채우겠다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가
떠오른 당신은 속이 뒤집혀도 검은데
나는 당신 속에서 당신을 꺼내는 중이었는데

핸들과 고개를 최대한 돌려도 빠져나올 수 없는 자리에 나는 멈춰 서 있다
비상등은 비상등을 깜박이게 하고
두 개의 비상등은 점점 다르게 깜빡이고
바람의 나선을 따라 떠오르는 날벌레들은 반짝이며 잊혀진다

당신이 오래전에 쥐어 준 작디작은
열쇠를 들고 방으로 걸어가는 열쇠 구멍인 나의 얼굴과

당신의 책갈피 속에 끼어
털어도 나오지 못하는 나

이긴 것을 모르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뚝 끊어진 신호음처럼
무표정하게
수화기 반대편에 앉아 있을 당신

개미귀신 같은 저녁의 불빛, 불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날벌레들이
가로등 유리구 안쪽에 수북하다


김승일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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