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담긴 편지 I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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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담긴 편지

 

당신이 찍은 사진을 현상했어요

기억나시죠? 같이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말이에요

당신이 찍은 바구니 오브제마다 노란 비옷을 입은 여자가 한 명씩 들어가 있지 뭐예요 얼굴이 명확히 찍히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눈 속에 있는 고장난 버스를 볼 수 있었어요 지금도 덜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답니다 사진을 서랍 속에 넣어두어도 계속 소리가 들려요

저는 요즘도 결혼식장에 비디오 촬영을 나가고 있어요

오늘 찍은 신랑신부는 떨려서 표정을 잡지 못하겠다며 미안해했고 무척 좋으니 염려 말라고 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찍었던 적은 없었을 거예요

늘 따분했던 앵무새 주례도 더듬거리며 모처럼 말다운 말을 하더군요

결혼식이 끝난 후 두 장님은 축복을 받으며 나갔죠 순간 내가 찍은 건 그들이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파울 클레의 그림 ‘지저귀는 기계’ 앞에서

저 찍어준 것 기억나세요?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말이에요

현상한 사진에 저는 없고 당신의 시선만이 있더군요

그래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정재학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카프카적인 퇴근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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