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 I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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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집

 

모래바람이 불어와 꼼짝없이 게르에 갇혀 있습니다. 여과 없이 훅, 들어오는 자연의 움직임과 불안정한 통신에 기대 희미하게 안부를 묻습니다. 모스부호처럼 짧고 명확하게. 그러나 무엇을 전할까요. 바람에는 지평선 너머에서 도착한 말들로 가득합니다. 풀을 뜯던 수다스러운 양의 일상, 갈퀴를 휘날리는 말들의 이동, 평원을 가로지르던 영양의 발자국, 언젠가 당신이 남긴 약속의 말이 도착합니다. 먼 곳에서 불어오는 소식은 흐릿하지만 그것을 어렴풋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지나온 생의 기억을 이 바람이 어렴풋이 실어옵니다. 와해된 기억들이 게르의 천장을 흔듭니다. 바람의 가장자리가 펄럭입니다. 온통 둥근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끝도 시작도 없는 평평한 세계의 중심에 나는 다시 둥근 집을 짓고 스스로 갇힙니다. 여과 없이 훅, 들어온 당신에게 온통 마음이 빼앗기던 그때처럼 중심을 잃고 흔들립니다. 비포장도로를 매끄럽게 지나온 바람의 울퉁불퉁한 상처는 누구에게 가 닿을까요. 덜컹거리는 문틈에도 바람의 살이 베입니다. 아주 오래된 슬픔이나 애써 잊었던 상처 같은, 어렴풋한 것들이 지나갑니다. 훗날의 우리는 오늘 날려 보낸 바람의 통각을 기억할 것입니다. 너무 오래돼 와해되기 직전 구름의 모습으로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불이 나기를 기다려 발아하는 쉬오크 불이 나서 섭씨 200°C 이상의 열기가 발생했을 때에만 발아하는 나무의 일종
의 솔방울에 오늘의 바람을 담습니다. 뜨거운 생의 한 순간을 위해 백 년 천 년을 품는 오랜 기다림으로 모스부호처럼 짧고 명료하게 나는 오늘, 타오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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