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처럼 I 이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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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처럼

 

생전복 다섯 마리가 나란히 구천 구백 원이었다
싸고 영양가가 높다 하니 집어 들고 집으로 온다
숟가락으로 파내어 초록 내장을 살살 달래듯이 씻어내는데
너 참 미끈거리는구나 전복!

민정이도 아프고 영옥언니도 아프고 수경선생님도 아프다는데
부엌에 서서 전복이나 파내고 있다
다들 어쩌고 있는 것인가, 속이 부대끼는데
전복 껍데기는 영롱한 빛을 품고 있다

싱크대 개수구에 의미도 없는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는데
껍데기를 잃은 전복 꿈틀거리다가 딱딱하게 굳어간다
힘이 세고 단단하고 뽀얗다 너 전복!
전복은 왜 말 못하는 뜨거운 입 같은가
왜 거칠고 환한 말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나도 집을 잃었어, 맨몸이고 푸르고 거칠고 차갑다
초록으로 부푸는 물결은 정말 안녕하신가
돋아날 것 없는 희망에 베이는 날들
깜빡이는 가로등 찬 불빛 아래 찢긴 마음을 기운다

시접을 넣는다, 는 세탁소 아저씨의 말을 생각해 본다
백광이나 거성, 이런 상호명을 중얼거려 본다
크고 환한 별이 뜬다면 내 머리 위의 일은 아닐 것이지만
어떤 기다림 위에 명랑할 것, 지치지 말 것
이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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