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말 I 김산

모른다는 말

 

“당신은 아직 나를 잘 몰라” 은하가 말했다
나는 뭔가 아는 척 피식 웃곤 했지만
도무지 모른다,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알 길이 없다
내가 귀신인 것을 당신들이 모르듯이
나의 전생이 당신들의 현생 앞에서 고갤 꺾듯이
천문이면서 천구인 은하로 들어가는 길은
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고 먼 고행
고행이란 말로 나의 모름은 희석되고 아득해지지만
“몰라”라는 말보다 비극적인 말은 “아직”이다
백자를 그리기 위해 백자의 배경을 그린
어느 젊은 화가가 나보다 은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금 절망했고 조금 더 은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쌩쌩 달리면서 나는
은하 곁으로 조금 더 가고 있다고 위안하던 날들이 있었다
바람의 門이면서 바람의 球인 그곳
은하를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 마주친
습기를 가득 품은 연록의 이름 모를 잡풀들
아침보다 저녁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순하고 깊다
몇 만 년 전 보았던 은하의 그 빛이
흰 천 아래로 차갑게 떨어질 때 아직 남은 손톱의 온기
손톱 위로 남기고 간 선명한 초승달이
백자의 둥근 주둥아리 속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다
귀신도 꿈에 귀신을 만나면 발모가지가 저려온다
차마, 모르는 별들이, 아직도, 은하 가득, 총총하다


김산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I 총체적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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