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덴부르크의 저녁 I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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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덴부르크의 저녁

 

운동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양팔 벌린다 일제히
드넓어지는
손끝과 손끝 사이
불고 있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훈화 말씀이
길어지고 길어지고

새카만 머리를 한 하굣길 학생들이 대로를 빠져나간다 수백 명의

쥐어 뜯겨 빠진 머리칼처럼
저들도 한 올 한 올
혼자 다니기 시작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각자의 정수리 위로
말씀이 떨어지고 양팔 벌리는 바람과 바람
낙엽이 움직이고
구름은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갑자기 보이지 않는 낙엽과
아직도 확연하게 날아가고 있는 구름을 향하여
날아간 새들이 처박히는 거기
머리칼 사이로 새고 있는 것
설렘을 간직하고 있는

뜨거운 물속에 섞이는 차가운 물처럼
한쪽 반구에서 다른 반구로 흘러가는 구름들
아무도 이름 부르지 않아서 내 이름이
선명해지는 초저녁 바람
이제 무엇을 쓸고 다니는 것일까

마그덴부르크의 저녁이 온다
수십 마리의 말들이 진공의 반구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오래된, 어느 날의 이국 풍경
펑 소리를 내며 어제와 오늘이, (하루하루가) 우스꽝스럽게 갈라진다면
눈물이 날까

머리에서 추락한
혼자가 또다시 혼자가 되는

낙엽과 구름
나의 괄호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태동하는 모든 바람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본다
다리도 내밀어본다
누가 나를 쥐어뜯는 것 같은데
아무도 없다


김승일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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