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사람 I 유지소

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사람

 

0시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는 사람도 아니야! 할 때의 그 사람도 아니었다
빠앙! 빵! 경적을 울리면서 달렸다 기분이 더러워진 당신이 허겁지겁 쫓아와서
이봐요, 빵집 아저씨!
내게 소리를 꽥 지른다면 나는 그 빵집 아저씨도 아니었다

내가, 웃고 있었다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처럼 내가,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없고 나 혼자서 환했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지났고 내일은 멀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무도 묻지 않은 채 조용히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당신 열쇠는 당신에게 주었고 내 열쇠는 내 주머니에 있다 나와 상관없이 강물은 흐르고 신호등은 바뀌고 별은 빛나고 들개는 죽었다 당연하고 당연하고 당연했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터널이 나타났다 라이트를 켭시다 지금부터 당신은 터널을 통과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불빛이라면, 나는 이미 두 개의 불빛, 불빛을 켜고 달리고 있었다 내 불빛은 충분히 밝고 빠르고 넘친다

절 한 채가 나타났다 촛불을 켜세요 지금부터 당신은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오
미안하다, 나에겐 빌어야 할 소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이 순간 당신 이모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순간 당신이 손을 번쩍 들고 이모, 여기 소주 두 병요! 나를 부른다면 당신은 운명적으로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유령이 될 것이다

0시의 도로는 리본에 묶여 있다 어떤 리본은 길고 노랗고 어떤 리본은 짧고 하얗다 도로는 내게 배달된 소포 같다
나는 리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리본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리본의 매듭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한 개의 빗방울이 떨어지고 조금 이따가 몇 개의 빗방울이 더 떨어졌다 이 길 위에서 내가 아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해도 길은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유지소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당신만 그런 게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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