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파랑 I 주영중

다시, 파랑

 

여자가 파랑 칫솔을 칫솔 통에 꽂기 시작하자
난 강력한 파랑의 습격에 손쓸 틈도 없이 다른 색들로 전전한다
노랑 빨강 옅은 초록

여자의 출입이 뜸해지자
난 통 속에서 여자의 파랑을 치우고 내 파랑들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난 그때부터 다시, 파랑
불편한 색들이 사라지자 모든 색은 정색이 반색이 되고
여자는 통 속에 다양한 색의 칫솔을 꽂기 시작했다

별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자 더더욱 파랑이 손쉬워진다
한차례의 파랑이 필요한 일, 색의 반란이 필요한 일

하지만 내가 잃은 건
파랑의 파랑, 파랑의 파도, 끈질긴 파랑, 파랑의 역습, 여자의 파랑
최소한 이 욕실에 묶여 있는 내 것이 아닌 색

여자가 돌아온 어느 밤,
비몽사몽 술에 취해 이를 닦는다
모든 색의 살갗에 나의 살갗을 가져다 대본다


주영중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검은 사이프러스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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