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참혹과 참혹 사이에 더 참혹한 희망을 어떻게 찔러 넣었을까 I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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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참혹과 참혹 사이에 더 참혹한 희망을 어떻게 찔러 넣었을까

 

바늘이 들어가는 것 하나 똑바로 보지 못하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다

한 일 분 누르고 있으라고 했는데 한 오 분 누르고 있는 사람의 마음처럼

바늘이 빠져나온 자리를 한참 바라본다

문지를수록 보잘것없는 것은 나의 생활뿐인가
문지를수록 보잘것없는 것은 나의 거짓뿐이다

분명한 혈관이 팔뚝 깊이 숨어 지나는 것은 간호사의 입장에서도 나의 입장에서도 불편한 것을 알면서도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먼지의 부유 같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멈춰 서 나의 생활을 보듯 여러 문양으로 가득한 응급실 천장을 보고
푸른 혈관을 껴안고 자라난 팔뚝을 본다

살기 위하여 가만히 숨을 고르는 사람의 마음처럼
심장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것은 나의 속죄뿐이다
병든 개의 꼬리를 매만지고 지나가는 오늘의 바람이
나무가 숨긴 나무를 흔들고 지나간다

그림자 하나 없는 절망과 절망 사이에도 위로는 언제나 끼어들고
응급실로 걸어와 머리를 베개 위에 두고서 별일 없다 아직도 집에 가는 중이라고 동료들을 속이는 것은
나의 작은 부끄러움 때문이다

집에 가까스로 도착하자마자 다시 어디로 어디로 바쁘게만 가야하는 나의 마음 위에 두는 피곤이
위로와 위로 사이
다시 비참하게 매달려 있다

누가 용서해주기를 바라면서 홀로 참혹한 것은 매일 빚을 지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극심한 야유와 조롱 가운데
두 팔을 벌리고 한나절 처참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만 생각한다
심계항진과 호흡곤란으로 자기 자신만 꼬옥 끌어안고 있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김승일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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