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되는 꿈 I 신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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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되는 꿈

 

가령, 내가 온힘으로 달려서
이 땅 끝까지 달려서 어느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끝없이 달릴 수 있고 절벽으로 몸을 날리거나
가만 멈춰 서서 생각에 잠기는 수도 있겠지.
여기 잠들어야 하나?
마저 헤엄쳐 건너야 하나?
내가 처음 마주한 벽을 무너뜨리고 처음 움켜쥔
문고리는 뜨겁게 달아올라 쥘 수도
놓아버릴 수도 없는, 여기
잠들어야 하나? 그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물가에는 언제나 하얀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얼빠진 사내가 있어 저 치명적인
인간의 꿈에 중독된 물빛에 비추자면
우리는 모두
죽음을 그리워하는 자연 또는
처음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내
또는 처음 노래를 지어 부른 여인
그 속이 타들어가는 열정을
헤아려보자

민물에서 짠물로
솟구치는 기포의 힘으로
물보라를 꽃처럼 틔워내며
서서히 항진하는 몸부림을 귀청을 찢는
폭발음을 일으키며 등성이에서 등성이로
절벽에서 절벽으로 쏟아져 내리는 아우성을
가령 내가 온힘으로 달려서 이 땅 끝까지 달리고 달려서
처음부터 다시 진화하는 법을 배워서
숨을 들이켜는 법부터
다시 익혀서

물속 깊이 주둥이는
길게 늘어뜨리고 목구멍으로는
공기를 욱여넣으며 마침내 울음도
웃음도 하얗게 말라붙는 진공으로, 더불어
꺼멓게 타들어간 등허리는 파도 위에 내어놓고
숨구멍은 고단한 이마 위에 옮아붙어서
무릎에서 발등까지 한데 뭉친
꼬리지느러미로 쿵, 쿵,
수면을 내리찍으며
물길을 틀 때

미끈한 물결 따라 옴폭 팬
물구덩이 봐라, 마법처럼 피어났다
오므라드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헐거운 심박동으로 옴폭 팬, 무덤을 닮은
물구덩이를 고래발자국이라 부를까?
가령 내가 저 멀고 춥고 아득한 물길 따라
꽃잎처럼 너울너울
피었다간 메워지는
고래발자국 몇 땀으로

이 땅을 버리고
맨 처음 바다로 나아간
한 마리 고래가 되어서
내 남은 숨 모두 들이켜고도
차고 넘칠 퀴퀴한 추억에 익사하던 어느 먼 옛날
전생의 힘을 빌어서도 끝장내지 못한 미련은
나도 모를 누구의 꿈결을 텀벙거리며
치달리고 달릴까?

저 잔잔한 수면을 헤치고
가라앉는 별 몇 알 물먹은 빛으로
뿜어 올리는 커다란 울음으로
탕, 탕, 탕,
항진하는 고래발자국 속에서
맨 처음 물속에 뛰어든 파동이 되어서
맥박이 되어서 노래가 되어서
마침내 내가
고래가 되어서
끝없이 끝도 없이.


신동옥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파동이 되어서 맥박이 되어서 노래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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