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에서(규방가사조) I 박종국

감자밭에서

 

멀리서 산비둘기 우는 소리 들립니다
생으로 이별한 부부 같은
그들의 구슬픈 응답, 감자 꽃 벌겋게 물들이는
저물 녘, 일몰은 달아올라
난 너를 지우고 싶어
난 너를 물들이고 싶어
부르면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울고 있습니다
감자 꽃을 따낼 때마다 가슴 저미는, 그 빛깔
다가오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원망이라도 하는 듯 휘감아 돕니다
꽃을 따내는 동안 쉬지 않고 울부짓습니다
날이 저물자 그 흐느낌
슬픔을 돌돌 말아 뿌리 쪽으로 내려 보내는
감자 잎 끝에서 은빛 광채로 빛납니다
그때마다 감자알 더욱 굵어지는 감자밭에서 나는
으스러지게 안기고 싶은 쓸쓸함
내가 이 빛 속에서는 유일한 티끌인 듯
한없이 가벼워진 멋진 황혼을 만났습니다
이파리마다 반짝이고 있는
붉디붉은 주홍 색깔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아, 평생 한결같은
그런 사랑 할 수만 있다면!


박종국 시인의 첫 번째 낭송 앨범 I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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